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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사랑하라! 없음
김명옥  김명옥님께 메일보내기   2012-12-07
 


남미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니“가장 인상적인 나라는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받곤 한다. 대답은 언제나 콜롬비아이다. ‘게릴라와 마약’으로 악명 높은 그곳에 도착했을 때, 웬걸, 나를 맞이한 것은 ‘키스’였다. 보이느니 입 맞추는 모습이요, 들리느니 쪽쪽거리는 소리였던 것이다. 택시에 합승이라도 하면, 미터기가 한 번씩 올라갈 때마다 뒷자리에서 한 번씩 뽀뽀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연인들만 그런 게 아니었다.

아이들 뺨은 이웃과 친지들의 밀물 같은 뽀뽀로 닳아 없어질 지경이었고, 심지어 중년부부들도 미터기 못지않은 간격으로 애정 표현을 해댔다. 나 자신, 결혼한 지 십사년차에 접어든 기혼자이기 때문일까? 청춘의 사랑이나 자식 사랑은 인류공통의 것이므로 그러려니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식지 않는 ‘중년의 사랑’만큼은 보고 또 보아도 신기하기만 했다.

예를 들어 보자. 콜롬비아 메데진의 버스 터미널, 한 중년부부가 이별하고 있다. 머리가 희끗한 남자는 아내의 가슴에 뺨을 대고, 곧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 아내가 아기를 어르듯 남편의 머리칼을 쓰다듬는다. 잠시 뒤 남편이 고개를 든다. 둘은 키스하고 어깨를 끌어안은 채 이야기를 나눈다. 아기 같던 남편의 표정이 어른스러워지면서 부부로서 현실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고는 또 키스하고 남편이 아내에게 도로 안긴다. 다시금 아기 같은 얼굴이 되어. 약 삼십분 동안 부부는 그러기를 열번쯤 반복했다. 마침내 남편이 버스에 올라탔다. 고작 네 시간 떨어진 곳으로 향하는 버스에. 그들이 유난스러웠던 걸까? 아니. 나는 걸어서 콜롬비아 국경을 넘었으니,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러한 풍경은 콜롬비아에서 매우 일상적이다.

 우리의 일상적인 풍경을 하나 떠올려보자. 일요일 정오의 감자탕집. 중년의 부부가 마주 앉아 ‘말없이’ 식사를 한다. 건져낸 뼈가 식탁위에 수북이 쌓이도록 끝끝내 말없이 식사를 한다. 

어느덧 부부의 위(胃)는 침묵 속에서도 꾸역꾸역 음식을 소화시켜내는 기술을 터득했다. 하루아침에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반목과 새로운 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어지는 좌절 가운데 궁여지책으로 터득된 생존기술일 터였다.

부부의 눈 또한 뛰어난 기술을 습득했다. 마주 앉아 있지만, 완벽하게 상대의 시선을 피하는 법을. ‘침묵’과 ‘외면’은 인류 역사상 가장 효과적으로 전염되는 질병 가운데 하나이다. 부부가 투명인간이 되어 앉아 있는 동안 사춘기 딸 역시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밥상 아래 휴대폰을 어루만지며 친구들에게 바삐 문자를 날리고 있다. ‘좀만 기다려. 금방 갈게. 웰케들 오래 먹는다니?’

이토록 다른 일상의 풍경을 지녔기 때문일까? 한국에 돌아온 뒤, 중년 기혼자들의 자리에서 오간 대화가 잊히지 않는다. 콜롬비아가 가장 인상적이었다는 말과 함께 내가 터미널의 부부를 예로 들었을 때, 그중 한 명이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그건 부부가 아니겠지! 불륜 커플이야!” 
“그 커플만 그런 게 아니라니까. 나라 전체가 그렇다니까.” 자리에 있던 기혼자들이 일초도 망설이지 않고 결론지었다. 
“그럼 나라 전체가 불륜인 거지!”

우리는 생의 어느 지점에서 열정을 잃고 키스를 멈추는가? 젊은 시절 키스 한 번 안 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유교적 국가 질서 속에 사는 우리들은 가정을 이루는 동시에 권위와 체신의 옷을 걸친다. 남자는 절대 남성성을 놓지 못 하고, 터미널에서 마누라 품에 안겨 아기처럼 우는 일은 가문의 명예를 걸고 있을 수 없다. 어디 이곳에 남자들이 울 시간과 공간이나 제대로 있는가? ‘전투적으로’ 돈 벌어 마누라와 새끼들 먹이고 가르치기도 바쁜데.

반면, 여자는 너무나 쉽게 여성성을 놓아버린다. 짧은 파마머리로 통일하고 무채색의 유부녀 교복을 입는다. 어디 이곳에 남편 머리카락 쓰다듬을 시간이 있는가? 아이 머리를 쥐어박으며 ‘전투적으로’ 교육에 매진하기도 바쁜데. 요컨대 개인의 욕구보다 집단의 규범이, 현재의 감정보다 미래의 자산이 승하는 곳에선 남녀관계, 특히나 결혼한 남녀의 관계가 말랑말랑하게 굴러갈 수 없는 법이다.

“결혼하면 열정이 식는 건 당연한 거야. 사랑? 그런 게 밥 먹여 주냐? 열심히 집 평수 늘리고 애 좋은 대학 보내고…, 걍 잔말 말고 정으로 살아!” 이것이 ‘체신’과 ‘생산’을 제 일순위에 두는 우리 사회의 암묵적 권고이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감자탕을 먹던 중년의 부부는 깨닫는다. 그들이 키스는커녕 손이라도 닿으면 화들짝 놀란다는 걸. 자식 얘기를 빼면 대화도 없다는 걸. 심지어 눈도 맞추지 않는다는 걸. 그래도 꾸역꾸역 밥은 잘 넘어간다는 걸. 중년의 위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콜롬비아를 불륜국가로 만들고 한바탕 웃었던 날, 나는 함께했던 기혼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열정적인 남미의 라티노들이 가르쳐 준 게 있다면 한 가지야. ‘지금 당장 사랑하라!’는 것.  남편이 있으면 끌어안고, 아내가 있으면 키스하고, 음악이 흐르면 눈치 보지 말고 같이 춤추는 거야. 힘도 들지 않고 돈도 들지 않아. 한 번뿐인 인생, 벽장 속에 아껴두지 말고 좀 주책스럽게 살아보는 거야.”♣


< 오소희씨의 정동에세이를 읽다가 내용이 너무 좋아서 옮겨보았습니다^^  지금 당장 사랑합시다! 인생의 쓰나미가 삶을 앗아가기 전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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